얼음 타서 마셔도 되는 와인이 있다? 여름철 '얼죽아'를 위한 와인 추천

2026. 6. 18. 17:45와인 가이드

여름만 되면 가게에 들어오시는 손님들 첫마디가 똑같아요. "시원한 거 없어요?" 와인을 좀 아시는 분들은 살짝 망설이면서 물어보세요. "와인에 얼음 넣어 마셔도 되나요? 그거 좀 없어 보이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웃으면서 답합니다. "유럽 사람들이 보면 오히려 부러워할 걸요."

실제로 매장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건데, 한국의 무더운 여름에 와인 한 잔 제대로 즐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셀러 없이 상온에 둔 레드와인은 한 시간만 지나도 후끈해지고, 화이트와인은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5분이면 미온수처럼 변해버리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트렌드에 맞춰서, 얼음을 타도 맛이 사는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을 구분해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동네 와인샵 사장님의 진짜 경험담이니 믿고 보셔도 됩니다.

와인에 얼음, 정말 무례한 행동일까? — 유럽이 먼저 시작한 '쿨한' 음주법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와인에 얼음 넣는 거,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럽에서는 여름철 정석으로 통하는 음용법이에요.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는 '칼리모초(Kalimotxo)'라는 음료가 있습니다. 레드와인과 콜라를 1:1로 섞고 얼음을 가득 채워 마시는데, 콜라의 단맛이 와인의 떫은맛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탄산 덕분에 청량감이 살아나서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프랑스 남부 니스나 생트로페 같은 휴양지에서는 '로제 피신(Rosé Piscine)', 직역하면 '수영장 로제'라는 음용법이 있는데, 드라이한 로제 와인에 얼음을 가득 채워 마시는 방식으로, 한 손님이 더위에 지친 로제 와인에 얼음을 부탁한 것에서 우연히 시작됐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는 화이트 포트와인에 토닉워터와 라임, 얼음을 섞은 '포르토 토니코(Porto Tónico)'가 젊은 층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해요. 진토닉처럼 보이지만 훨씬 부드럽고 과일향이 살아있는 게 특징입니다. 한국 와인 칼럼에서도 실제로 와인에 조예가 깊고 소믈리에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는 전문가가 식사 자리에서 얼음과 함께 와인을 내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사례를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와인 애호가가 이 방식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얼음이 녹으면 향이 약해지고 밸런스가 틀어지며 바디감도 떨어지기 때문에, 원래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은 와인이라면 본연의 맛과는 다른 와인이 된다는 반론도 분명 존재합니다. 결국 핵심은 "어떤 와인이냐"입니다. 모든 와인을 얼음에 말아먹을 게 아니라, 얼음과 어울리도록 설계됐거나 애초에 가볍고 산뜻한 와인을 고르는 게 진짜 포인트예요.

그래서 얼음 넣어도 되는 와인은 따로 있다 — 매장에서 직접 권하는 추천 리스트

손님들께 가장 많이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이거예요. "이 와인은 얼음 넣어도 돼요"라고 말할 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1) 타닌이 적고 산도가 높은 레드와인
피노누아, 보졸레, 혹은 머루포도로 만든 가벼운 국산 레드와인처럼 떫은맛이 적고 산미가 살아있는 와인은 얼음 한두 개와 함께 마셔도 균형이 크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더운 여름에 타닌이 적고 산도가 높은 와인을 마실 때는, 온도 관리가 안 된 미온의 와인을 그대로 마시기보다 얼음을 한 개 넣어 마시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게 와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2) 얼음 전용으로 설계된 스파클링 와인
이건 진짜 신기한 부분인데, 아예 "얼음을 넣고 마실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와인이 따로 있습니다. 이런 와인들은 얼음이 녹아 와인이 묽어져도 맛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일반 와인보다 당도와 산도를 약간 더 높게 설계하고, 보디감을 유지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도 살짝 높게 잡는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모엣샹동 아이스 임페리얼이 있는데, 샴페인 최초로 얼음과 함께 마시도록 개발된 제품으로, 맛이 희석될 것을 감안해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 비율을 최대 90%까지 높여 묵직한 바디감을 살렸다고 합니다.

모엣샹동 같은 고급와인은 아니지만 우리 가게에도 얼음을 넣어 마실 수 있는 스파클링 와인이 있습니다. 산도가 있고 스위트해서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즐기기 딱 좋은 저가와인입니다. 칵테일로 즐기기에도 아주 그만입니다.

 

얼음을 넣어 마실 수 있는 와인 이미지

 

3) 달콤하고 향이 진한 와인
단맛이 있고 향이 진한 와인은 얼음이 녹아도 맛이 크게 변하지 않고, 오히려 보디감이 가벼워져 더운 여름에는 얼음과 함께 즐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모스카토 다스티나 브라케토 다퀴가 좋은 예인데, 브라케토 다퀴는 원래 알코올 도수가 낮고 단맛이 나며 붉은 베리향이 진한 와인이지만, 얼음을 더하면 오히려 풍미가 산뜻해지고 당도는 낮아져 상큼함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매콤한 한국 음식과의 궁합도 좋아서, 떡볶이나 김치볶음밥을 곁들이는 홈파티에 잘 어울립니다.

반대로 얼음을 넣으면 손해 보는 와인도 분명히 있습니다. 오크 숙성이 깊게 들어간 풀바디 레드와인(카베르네 소비뇽, 시라 등)이나 섬세한 산미와 미네랄감이 매력인 고급 화이트와인은 얼음을 넣는 순간 향과 풍미가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비싼 와인일수록 향과 질감으로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이런 와인은 차가운 와인쿨러나 짧은 냉장 보관으로 온도만 맞춰서 본연의 맛을 즐기시는 걸 추천드려요.

집에서 바로 따라 하는 여름 와인 활용법 — 매장 사장님의 꿀팁

매장에서 손님들께 자주 알려드리는 실전 팁 몇 가지를 정리해 봤습니다.

잔의 크기를 키우세요. 얼음을 넣을 거라면 일반 와인잔보다 넉넉한 사이즈의 잔을 쓰는 게 좋습니다. 얼음이 차지하는 공간만큼 와인과 얼음이 빨리 만나서 급격하게 희석되는 걸 막아주거든요.

얼음은 와인으로 직접 만드세요. 마시고 남은 와인을 큐브 트레이에 얼려두면, 다음에 마실 때 일반 물 얼음 대신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얼음이 녹아도 도수와 향이 거의 그대로 유지돼서, 끝까지 와인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는 팁인데, 한 번 해보시면 다시는 물 얼음으로 못 돌아가실 거예요.

탄산수나 토닉워터를 섞어보세요. 화이트 포트와인이나 가벼운 화이트와인에 토닉워터와 라임을 더하면 앞서 소개한 포르토 토니코처럼 진토닉 느낌의 산뜻한 여름 음료가 완성됩니다. 알코올에 약한 분들과 함께하는 자리라면 와인 양을 줄이고 탄산수 비율을 높여서 가볍게 즐기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온도부터 점검하세요. 사실 얼음을 넣기 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와인 자체의 보관 온도를 맞추는 겁니다. 와인을 가장 맛있게 마시는 데에는 온도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적정 온도로 보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미온의 와인을 억지로 마시기보다 얼음을 활용해 시원하게 즐기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화이트와인은 냉장고에서 1시간 정도, 레드와인은 가볍게 15분 정도만 넣어뒀다가 마셔도 한국의 여름 더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결국 와인이라는 게 정답이 정해진 음료가 아니라는 걸, 매장을 운영하면서 매일 느낍니다. 비싸고 묵직한 와인만이 '제대로' 마시는 방법은 아니에요. 올여름엔 가볍게 산미가 살아있는 와인이나 얼음 전용으로 나온 스파클링 와인을 하나 골라서, 시원하게 즐겨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얼죽아라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유럽 사람들도 이미 다 그렇게 마시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