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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비싼 사케인데, 뭐가 다른 거예요?"
얼마 전 매장에 오신 단골손님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선물용으로 사케를 찾는데, 쿠보다 만쥬랑 닷사이 23 중에 뭐가 더 좋아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둘 다 좋은 사케이긴 한데, 성격이 완전히 다른 술이거든요. 마치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중 어느 게 더 맛있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질문이었던 셈이죠.
사실 이 두 사케는 가격대만 비슷할 뿐 태생부터 다릅니다. 하나는 깔끔함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니가타 사케의 자존심이고, 다른 하나는 향의 마법사라 불리며 전 세계 사케 시장을 뒤흔든 야마구치의 반란아입니다. 저희 매장에서도 이 두 병을 나란히 두고 있는데, 실제로 마셔본 경험을 바탕으로 라벨, 향, 맛, 그리고 구매 팁까지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쿠보다 만쥬 — 니가타가 만든 단정함의 정수
쿠보다(久保田)는 니가타현 아사히주조(朝日酒造)에서 만드는 브랜드로, 그중에서도 만쥬(萬寿)는 쿠보다 라인업 최상위에 있는 준마이다이긴조입니다. 정미보합률은 약 40% 전후로, 쌀알을 반 넘게 깎아내고 남은 심백 부분만으로 빚습니다. 니가타 사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탄레이 카라구치, 즉 담백하고 깔끔한 드라이 스타일입니다. 만쥬 역시 이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화려한 향보다는 물처럼 맑고 미네랄 한 질감, 마신 후 깔끔하게 떨어지는 여운이 특징입니다. 과일향이나 꽃향이 튀지 않고 은은한 곡물향과 살짝의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편이라, 사케답게 마시고 싶은 분들께 잘 맞습니다.
닷사이 준마이다이긴조 23 — 정미율 23%가 만든 향의 폭발
닷사이(獺祭)는 야마구치현 아사히주조(旭酒造, 쿠보다와는 다른 회사입니다)에서 만드는 브랜드로, 23이라는 숫자는 정미보합률 23%를 의미합니다. 쌀을 77%나 깎아내고 단 23%만 남긴다는 뜻인데, 이는 전 세계 사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정미율입니다. 야마다니시키라는 최상급 주조미를 이 정도까지 깎으면 잡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순수한 전분질만 남아 발효되면서 화려한 향이 극대화됩니다. 실제로 마셔보면 멜론, 배, 리치 같은 과일향과 은은한 꽃향이 잔에서부터 확 올라옵니다. 입에 머금으면 부드럽고 실크 같은 질감에 단맛이 살짝 느껴지다가 산미가 균형을 잡아주며 마무리됩니다. 니혼슈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는, 입문용이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결정적 차이는 향과 단맛의 방향성
정리하면 쿠보다 만쥬는 향이 절제되어 있고 맛은 드라이하며 깔끔합니다. 술 자체의 완성도를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반대로 닷사이 23은 향이 화려하게 터지고 맛은 부드럽고 은근한 단맛이 감돕니다. 향과 여운을 즐기는 스타일이죠. 흥미로운 점은 정미율이 낮을수록, 즉 쌀을 많이 깎을수록 무조건 좋은 술이라는 오해가 많다는 겁니다. 하지만 닷사이 23이 화려한 이유는 정미율뿐 아니라 야마구치 특유의 효모와 저온 발효 방식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반대로 만쥬는 정미율이 그보다 낮아도 니가타 특유의 물과 양조 철학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린 경우입니다. 즉 정미율 숫자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게 이 비교의 핵심입니다.
맛보지 않고 고르는 법
매장에서 손님들께 항상 말씀드리는 게 있습니다. 직접 향을 맡아보고 고르실 수 없으니 라벨을 보는 눈을 기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미보합률 숫자가 낮을수록, 그러니까 23%, 35% 처럼 작은 숫자일수록 대체로 향이 화려하고 부드러운 편입니다. 준마이다이긴조라는 표기가 있다면 쌀과 누룩과 물 외에 첨가물이 없는 고급 사케라는 뜻이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생산지역도 힌트가 됩니다. 니가타라면 대체로 드라이하고 깔끔한 스타일, 야마구치나 효고 쪽이라면 향이 풍부한 스타일일 확률이 높습니다. 선물용이라면 화려한 향을 좋아할 것 같은 상대에게는 닷사이 계열을, 정통 니혼슈 맛을 아는 상대에게는 쿠보다 계열을 추천드립니다.
어떤 상황에 어떤 술
어떤 상황에 어떤 술을 선택해야할까. 회와 초밥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야 하는 안주라면 쿠보다 만쥬처럼 담백한 술이 음식을 방해하지 않아 좋습니다. 반대로 크림소스 파스타나 치즈, 디저트와 곁들인다면 닷사이 23의 과일향과 은근한 단맛이 훨씬 잘 어우러집니다.
그러나, 또 꼭 그런 것 만은 아닙니다. 며칠 전 식사자리에서 참치회와 닷사이 39를 마셨는데 참치회의 담백함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닷사이는 확실하게 향이 너무 좋은 술인 거 맞습니다. 꼭 와인에 참치회를 먹는 것 마냥 입안에 향이 맴돕니다. 저는 항상 손님들께 닷사이 23을 와인에 비유해 드리곤 합니다. 마치 좋은 와인을 마시는 것 같다고요.
사케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닷사이가 진입장벽이 낮고, 이미 니혼슈를 즐겨 마시는 애호가라면 쿠보다의 정갈함에 더 놀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뭐가 더 좋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누구에게, 어떤 음식과,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지는 명확하게 갈립니다. 다음에 사케를 고르실 때는 가격표보다 이 두 가지 질문을 먼저 떠올려보세요. 향을 원하는가, 깔끔함을 원하는가. 그 답이 곧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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