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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던진 질문 하나.. 얼마 전 가게로 단골손님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대뜸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장님, 저희 집은 저녁마다 찌개를 끓여 먹는데, 와인은 꼭 스테이크나 파스타에만 어울리는 건가요?" 순간 저는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랫동안 와인이라는 술을 서양 음식의 전유물처럼 생각해 오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옳고나 하고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발효와 감칠맛이 진하게 밴 한식이야말로 와인과 만났을 때 의외의 궁합을 보여줄 수 있는 음식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손님과 나눈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서, 매장에 들어온 와인들을 예로 들어가며 정리해보려 합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어울리는 와인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어울리는 와인

김치찌개, 매운맛과 신맛을 다스리는 와인

김치찌개는 발효된 김치의 신맛과 고춧가루의 매운맛, 돼지고기 육수의 기름진 감칠맛이 한데 뒤섞인 음식입니다. 이런 복합적인 맛을 상대할 와인이라면 우선 산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산도가 낮은 와인은 김치의 신맛에 눌려 밋밋하게 느껴지기 쉽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르헨티나 말벡을 자주 추천합니다. 말벡은 검붉은 과일 향과 함께 은은한 스파이시함을 지니고 있어서, 고춧가루의 매운 기운과 부딪히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감싸주는 느낌을 줍니다. 매콤함이 더 강한 김치찌개를 즐기신다면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의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도 좋은 선택입니다. 프리미티보는 진판델과 같은 뿌리를 가진 품종답게 잘 익은 자두, 건포도 같은 달콤한 과실향이 도드라지는데, 이 은은한 단맛이 고추의 매운 기운을 부드럽게 눌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알코올 도수가 다소 높은 편이라 라벨에서 도수를 한 번 확인하시고, 14도 이상인 제품이라면 찌개의 얼큰함과 균형을 맞추기에 더 유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쉬라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호주산 쉬라즈 특유의 후추 같은 향신료 뉘앙스는 김치찌개의 칼칼함과 톤을 맞추는 데 탁월합니다. 다만 오크 숙성이 강하게 들어간 쉬라즈는 자칫 찌개의 발효향과 부딪힐 수 있으니, 라벨에 오크 숙성 개월 수나 배럴 사용 여부가 적혀 있다면 참고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된장찌개, 감칠맛에는 부드러운 레드와인

된장찌개는 김치찌개와는 결이 다릅니다. 매운맛보다는 된장 특유의 구수하고 짭짤한 감칠맛, 그리고 두부와 채소가 주는 은은한 단맛이 중심을 이루죠. 이런 음식 앞에서는 타닌이 강하고 힘이 센 와인보다, 부드럽고 산뜻한 레드와인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저는 된장찌개를 즐기시는 손님들께는 피노누아를 자주 권해드립니다. 피노누아는 타닌이 부드럽고 산도가 상큼하며, 붉은 체리나 산딸기 같은 가벼운 과실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산뜻함이 된장의 무거운 감칠맛을 씻어주듯 정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오크 향이 과하지 않고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된 피노누아라면, 된장찌개 특유의 구수한 향과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라벨을 고르실 때는 생산지의 기후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프랑스 부르고뉴나 뉴질랜드 중부 오타고처럼 서늘한 산지에서 만든 피노누아는 대체로 산도가 살아있고 타닌이 얌전한 편입니다. 만약 된장찌개에 청양고추를 넣어 얼큰하게 끓이신다면, 앞서 말씀드린 말벡이나 프리미티보처럼 조금 더 힘이 있는 와인으로 바꿔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같은 찌개라도 그날의 매운 정도에 따라 와인을 유연하게 바꿔보시는 재미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병을 열어보지 못하는 우리, 라벨이 곧 힌트입니다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손님들이 가장 아쉬워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마트의 시식 코너처럼 와인을 미리 맛보고 살 수 없다는 것이죠. 밀봉된 병은 열어볼 수 없으니, 결국 라벨이 주는 정보가 선택의 전부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손님들께 라벨에서 세 가지만 확인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첫째는 포도 품종입니다. 말벡, 피노누아, 프리미티보처럼 품종명이 적혀 있다면 오늘 말씀드린 특징을 그대로 대입해보시면 됩니다. 둘째는 생산지입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더운 지역에서 자란 포도는 과실향과 알코올이 진하고, 서늘한 지역에서 자란 포도는 산도가 살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알코올 도수입니다. 도수가 높을수록 대체로 무게감이 있고, 도수가 낮을수록 가볍고 산뜻한 편이라고 이해하시면 찌개의 강도에 맞춰 고르시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이 세 가지 정보만 익혀두셔도, 병을 열어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라벨을 읽는 안목으로 충분히 채우실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찌개 한 그릇에 와인 한 잔 사실 와인과 한식의 만남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효와 숙성이라는 공통점을 떠올려보면, 김치나 된장이나 와인이나 결국은 시간이 만들어낸 맛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 찌개가 올라온다면, 소주대신 와인 한 병을 슬쩍 곁들여보시는 건 어떨까요. 매콤한 김치찌개에는 말벡이나 프리미티보를, 구수한 된장찌개에는 피노누아를 떠올리시면서 오늘 소개해드린 이야기가 작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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