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16. 19:20ㆍ카테고리 없음
2025년 한 해 동안 국내 위스키 수입액이 전년 대비 8.5% 감소했습니다(출처: 관세청). 제가 운영하는 주류 판매점에서도 올해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걸 직접 체감했는데, 흥미롭게도 특정 제품들은 오히려 폭발적으로 팔려나갔습니다. 발베니 12년은 재고가 들어오기 무섭게 동났고, 히비키는 입고 자체가 어려워 손님들이 예약까지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불경기 속에서도 위스키 소비 패턴은 극명하게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주요 유통망별 위스키 판매 1위 분석
주류상회 비(Be)는 전국 50개 지점 기준으로 진빔 화이트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진빔이 작년보다 판매량이 오히려 줄었다는 점입니다. 1위를 유지했지만 전체 시장 파이가 줄어들면서 "진빔도 비싸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죠.
롯데마트 112개 지점과 보틀벙커를 합친 통계에서는 산토리 가쿠빈이 1위를 기록했습니다. 다만 가쿠빈은 작년처럼 전 유통망을 석권하지 못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 데일리샷에서는 발베니 12년 더블우드가 1위를 차지했는데, 약 1만 6천 병이 판매되며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건 유통 채널별로 소비자 성향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대형마트는 장 보러 온 김에 구매하는 라이트 유저가 많고, 전문 보틀샵은 목적성 있는 구매자가 찾습니다. 온라인은 편의점 픽업이 가능해 가성비를 따지는 2030 세대가 주 고객층이더군요.
가성비 위스키가 만든 새로운 소비 트렌드
올해 위스키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갓성비'였습니다. 갓성비(God+가성비)란 가성비를 넘어선 극강의 가격 대비 만족도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저렴한 게 아니라 알코올 도수까지 고려한 가격 효율성을 따지는 소비자가 급증했습니다.
와일드터키 레어브리드가 대표적입니다. 버번위스키임에도 싱글몰트 입문자들이 찾을 만큼 인기를 끌었고, 주류상회 비 차트에서 전년 대비 매출이 15% 상승하며 처음으로 톱 10에 진입했습니다. 제가 직접 고객들과 대화해 보니 "같은 가격이면 알코올 도수가 높은 걸 사겠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더 글랜리, 그란츠 트리플우드 같은 1만 원대 위스키가 급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데일리샷에서 더 글랜리가 2위에 오른 건 단독 판매 상품이라는 점도 있지만, 가격 대비 하이볼 퀄리티가 뛰어나다는 입소문이 컸습니다. 실제로 제 매장에서도 "하이볼 만들 위스키 추천해 달라"는 손님에게 1만 원대 제품을 권하면 대부분 만족해하며 재구매로 이어졌습니다.
특가 행사도 두드러졌습니다. 홈플러스의 발베니 12년 66,000원,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크라겐모어 12년 49,000원 같은 초특가 세일이 SNS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홍콩 면세점에서 크라겐모어가 65,000원인 걸 생각하면 거의 글로벌 최저가 수준이었죠.
프리미엄 한정판 위스키의 양극화 현상
가성비 위스키가 대세였지만 정반대 트렌드도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바로 희소성 있는 프리미엄 위스키에 대한 수요입니다. 보틀벙커 3개 지점만 따로 분석한 데이터를 보면 라가불린 16년이 1위, 조니워커 블루가 5위에 올랐습니다. 일반 롯데마트 순위와는 완전히 다른 구성입니다.
여기서 희소성이란 단순히 비싼 위스키가 아니라 '구하기 어려운' 위스키를 의미합니다. 제 매장에도 "어디서도 못 구하는 위스키 없냐"라고 찾는 손님이 늘었습니다. 싱글 캐스크, 증류소 독점 보틀링, 한정 수량 출시 제품 등이 그 대상이었죠.
일본 위스키 열풍도 여전했습니다. 히비키(Hibiki)는 금액이 높아도 보이는 족족 팔렸고, 일본 출장 다녀온 손님이 "현지에서도 못 구했다"며 허탈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급량 자체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프리미엄이 붙어도 구매 의사가 확고했습니다.
콜라보 에디션도 주목받았습니다. 게임 던전 앤 파이터와 협업한 밸런타인 에디션, 북극곰 패키지의 츠루노 유즈 등 특별한 디자인의 한정판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제품은 위스키 맛보다 '소장 가치'를 더 따지는 고객층이 주로 구매했습니다.
일본 사케 시장의 급성장과 소비 변화

올해 또 하나의 특징은 사케(일본술) 소비 증가입니다. 롯데마트 기준으로 일본주 매출이 지속적으로 신장세를 보였고, 데일리샷 판매 순위에서도 쿠보타, 다사이 45, 츠루노 유즈 유자 리큐르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출처: 롯데마트).
사케 인기의 배경에는 '절제된 음주 문화' 확산이 있습니다. 사케는 위스키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보통 15도 내외) 부드러운 맛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기기 좋습니다. 특히 2030 여성 고객이 크게 늘었는데, "독하지 않으면서 분위기 있는 술"을 찾는 수요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북극곰의 눈물 츠루마이는 SNS에서 디자인 때문에 화제가 됐고, 추성훈 선수가 개발에 참여한 아키츠 노 다이긴조도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가 직접 맛본 아키츠 노는 과일향이 풍부하면서도 깔끔한 끝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불경기 속에서도 술 소비는 계속되지만 방향이 명확히 갈렸습니다. 가성비를 극한까지 추구하거나, 반대로 희소성 있는 특별한 한 병을 찾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건 중간 가격대 제품이 가장 힘들어졌다는 점입니다. 2만 원대 후반~3만 원대 위스키는 "이 돈이면 저가 두 병 사겠다" 또는 "조금 더 보태서 프리미엄 사겠다"는 반응 때문에 고전했습니다.
2026년에도 이 트렌드는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형마트와 온라인의 초특가 경쟁은 계속될 것이고, 반대편에서는 한정판과 콜라보 제품이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대형마트가 줄 수 없는 건 결국 '경험'과 '희소성'이다. 이 키워드를 AI시대에 맞는 전략으로 승화시켜내야 한다.